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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양만춘 장군이 실존인물이 아니라는 말이 있던데 양만춘 장군은 실존했던 인물이 맞나요?
고구려 양만춘 장군은 실존 인물인지 여부는 오랜 역사계의 논란 사항입니다. 일반적으로 양만춘은 645년 안시성 전투 당시 고구려 안시성의 성주로 당태종 이세민 공격을 막아낸 인물로 전해집니다. 하지만 양만춘의 실존에 대한 명확한 역사적 근거가 부족합니다. 고려 시대 이전의 사료인 <삼국사기>, <삼국유사>에서 양만춘 장군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양만춘이라는 이름은 주로 조선시대 이후 소설과 민간 전승에서 등장하면서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특히 명나라 시대 소설 <당서지> 등에서 처음 언급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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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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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충신에서 좌평 성충이 충신이라 불리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요?
성충은 백제 의자왕 시대의 최고 관직인 좌평입니다. 그는 의자왕의 사치와 향락에 바져 국정을 소홀히하자 이를 적극적으로 간언하다가 투옥되어 옥중에서 단식을 하다 순국하였습니다.특히 656년, 의자왕이 신라와의 전쟁에서 연승한 후 자만과 향락에 빠지자 성충은 이를 간절히 말렸으나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옥에 가둔 것입니다. 성충의 충신적 행동은 왕의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 목숨을 걸고 간언하고 결국 옥중에서 단식하다 순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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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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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김건희 부부는 왜 문화재를 대여해 간 걸까요?
윤석열, 김건희 부부가 대통령 관저로 문화재를 대여하여 가져간 이유는 주로 관저 인테리이와 문화적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것으로 파악됩니다.부부는 국민에게 열린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취지로 문화재와 전승 공예품을 활용해 관저 분위기를 고급스럽게 전통적인 느낌으로 꾸미려 했습니다. 다만 문화재를 이용하여 관저를 꾸미려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고, 문화재 활용에 대한 논란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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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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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서부터 이어오고 있는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가 앞으로 바뀔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2차 대전 이후 이어진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는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상당히 변화가 엿 보이고 있습니다. 현재 국제 정세는 일방주의 강화와 보호무역주의 확산, 동맹 관계의 불안정, 중국과 인도 등 신흥 강국의 부상으로 다극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국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과거 1세기 동안처럼 미국 중심에서 벗어나 다극화 되는 과정이라 판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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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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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조조는 양자로 들어가기 전에 어떤 집안이었나요?
조조는 본래 하우씨 집안 출신입니다. 그의 아버지 조숭이 환관이었던 조등의 양자로 입양되어 조씨 성을 갖게 된 것입니다. 환관 집안으로 양자가 되어 조씨성을 쓰게 된 것이죠.하지만 조조 본인은 하후씨 등의 친척과 매우 가까운 관계였고, 하후씨 가문과 협력하며 세력을 키워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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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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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깃발부대가 진짜로 존재했나요?
한국 전쟁 당시 '깃발부대'라는 명칭으로 알려진 부대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은 부대입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 나오는 북한 깃발부대는 허구적 설정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깃발을 주제로 한 부대는 없었지만 전투 깃발은 각 부대가 전투에서 사용하는 사용하는 상징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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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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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양반, 중인, 천민의 비율은 어떻게 되나요?
조선시대 신분별 비율은 시기별로 차이가 있습니다. 조선 전기에는 양반의 비율이 매우 낮아 양반은 0.3~1, 중인 0.5, 상민 5~6, 천민(노비) 3~4였습니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는 양반 중심의 신분질서가 붕괴되어 양반이 2.5~5, 중인 0.5, 상민 3~5, 천민은 1 이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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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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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의 북벌이 삼국지 4대 대전에.
삼국지의 4대 대전에는 적벽대전, 관도대전, 형주 및 이릉 전투 등 국가간 대규모 전투입니다. 하지만 제갈량의 북벌은 본질적으로 위나라와 촉나라 간 국경 지대를 중심으로 공세, 수비를 반복하는 전쟁입니다. 따라서 대규모 일전보다는 오랜 동안 교착 상태가 이어졌기 때문에 4대 대전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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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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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 해역에서 발견되는 난파선과 고려 청자
마도 해역은 충남 태안의 바다로 물살이 거칠고, 풍랑이 심해 '배들의 무덤'이라 불립니다. 이 곳에서 2007년 쭈구미와 함께 고려 청자가 올라오면서 해저에 여러 난파선이 침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현재 5척의 난파선이 발견되었습니다. 마도 4호선은 2015년 발견된 조선 시대 조운선으로 1420년경에 침몰된 것으로 추정되며, 많은 곡물과 목간, 분청사기가 발견되었습니다. 마도 5호선은 최근에 발견되어 내년부터 본결 발굴 예정인데, 1150~1175년 사이 고려 중기의 선박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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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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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관노비가 있다고 하는데요 이런 사람은 왜 관노가 된건가요
조선시대 관노비는 관청에 소속된 노비를 말합니다. 관노비는 입역노비와 외거노비로 구분합니다. 입역 노비는 관청 청소, 수리, 경호, 행정 보조 등을 잡역에 종사합니다. 하지만 외거 노비는 관청 소유의 토지를 경작하기 위해 따로 거주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외거노비도 신공을 납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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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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