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딜정책은 왜 미국 정부의 역할은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나요?
뉴딜 정책은 미국의 대공황이라는 위기 상황에서 작은 정부, 시장 자율 패러다임을 무너뜨린 것에 비롯되었습니다. 즉, 시장은 스스로 조정된다는 믿음이 무너졌고, 정부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연방 주도의 대규모 공공사업, 금융 규제, 사회보장을 밀어붙여 추진한 것입니다. 정부는 재정, 복지의 영구 확대를 통해 사회보장법 등으로 사회 복지를 강화하였습니다. 그리고 은행 개혁, 증권 규제, 농업 산업 가격 안정, 노동권 보호 등 규제 체제를 강화하였습니다. 또한 주정부에 대한 연방 보조금을 대폭 늘려 재정 중앙화, 집행 분산화 체제로 전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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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기원후 할 때 기원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기원전의 기준이 되는 기원의 이전 연도, 기원후는 기준이 되는 기원의 이후 연도를 말합니다. 서양에서 널리 쓰이는 서력 기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원년으로 삼아 햇수를 세는 방식입니다. 이 체계를 처음 정리한 사람은 6세기 로마의 수도사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로 부활절 계산 등을 위해 Anno Domini(주님의 해) 연대기를 만들었습니다. 이후 유럽의 문화, 종교적 영향력으로 이 기년법이 세계적으로 퍼졌고, 한국, 일본 등에서도 근대화 과정에서 채택되었습니다.BC는 Before Christ(그리스도 이전)로 한국어의 기원전(또는 서기전), 그리고 AD는 Anno Domini(주님의 해)로 한국어의 기원후(또는 서기)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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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로는 백범김구와 관련이 있는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과 관련하여
백범로는 효창공원 인근을 지나는 도로입니다. 1984년 용산로, 용마로를 통합하면서 백범 김구의 호 '백범'을 떠나 개칭되었습니다. 효창공원은 광복 이후 김구 주석이 이봉창, 윤봉기, 백정기 3의사의 유해를 모셔와 모시고, 안중근 의사도 모시려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동지와 함께 잠들겠다고 유언하여 1949년 서거 후 이 곳에 안장되었습니다. 그런데, 인천에도 백범로가 있는데, 이는 인천 감옥에서 복역, 탈옥한 인연을 기려 개칭된 경우입니다.구안동 김씨는 안동을 본관으로 하는 김씨 중 하나로 신라 경순왕의 후손 김숙승으로 합니다. 중시조 김방경은 삼별초, 왜구 토벌에 공을 세운 고려 장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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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는 어디에서 왔나요? 상형문자?
5~6세기 한자가 유입되어 만들어진 것입니다. 처음에는 뜻으로 썼지만 일본어 음절을 표기하기 위해 발음만 빌리는 용법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7~8세기 한자를 뜻이 아닌 소리로만 사용했는데, 이를 만요 가요라 합니다. 그리고 같은 만요가나를 빠르게 흘려 쓰는 흘려 쓰는 초서를 쓰면서 초가나를 사용하다 9세기 헤이안 시대에 들어서 궁중 여성들이 편지, 문학 작품에 흘림체를 많이 쓰면서 히라가나로 정착되었습니다. 따라서 히라가나는 한자에서 왔다는 설명은 맞습니다. 다만 그 모양은 그림문자 자체가 아니라 한자를 소리만 빌려 쓰고, 다시 흘림체로 간략화한 과정을 거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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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의 이름 앞 묘호를 붙이는 것은 어떤 기준이 있나요?
조선시대 국왕의 사후 문묘에 신주를 모시기 새로운 이름을 만드는데, 이를 묘호라 합니다. 묘호는 생전의 업적을 바탕으로 신하들과 후왕에 의해 결정됩니다. '조'는 전통적으로 창업하거나 큰 공을 세운 국왕에 해당됩니다. 예를 들어 태조, 세조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종'은 왕조의 정통성을 계승하여 나라를 다스린왕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조는 무조건 훌륭한 왕, 종은 평범한 왕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조선 후기 정치적 이유로 '종'을 '조'로 추숭한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광해군때 선종을 '선조', 고종 때는 영종을 영조, 정종을 정조, 순종을 순조로 격상하였습니다. 묘호는 단순히 왕의 업적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서 붙인 이름이 아니라, 왕실과 정치적 상황이 반영된 이름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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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 묘호의 "*조" "*종" 로 끝나는 왕의 뜻은 무엇인가요?
조선의 왕은 사후 왕의 업적으로 바탕으로 시호, 묘호를 정합니다. 특히 묘호는 종묘에 모실 때 붙이는 이름으로 뒷 글자는 조, 종으로 합니다.'조'는 나라를 세웠거나 국가의 정통성을 다시 일으키는 등 특별한 공로를 세운 왕이며, 태조, 세조, 선조 등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종'은 선대 왕의 정통성을 계승해 나라를 안정적으로 다스리고 덕을 베픈 왕에게 붙였습니다. 정종, 태종, 세종에 해당됩니다. 다만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실제 묘호는 왕이 죽은 뒤 신하들이 공적과 정통성을 평가해 정했으며, 정치적 판단도 반영되었습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조는 공적과 중흥, 종은 계승과 통치의 덕을 뜻한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그리고 후대에서 추숭하여 종을 조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고종 당시 영종은 영조, 정종은 정조, 순종은 순조로 격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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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이슬람 수도승들의 밤샘 기도를 돕기 위한 음료에서 어떻게 유럽 계몽주의와 카페 문화를 촉발했나요?
커피가 처음 발견된 곳은 에디오피아입니다. 그런데, 15세기 에멘의 수피교 수도승들이 밤샘 기도와 수행 중 졸음을 쫒고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커피를 마시면서 널리 알려기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수피 공동체의 수도승들이 커피를 규칙적으로 재배하고 의례적인 음료로 체계화하였습니다. 16세기 이후 메카, 카이로, 이스탄불 등으로 전파되었습니다. 그리고 커피하우스가 생겼고, 사람들은 그 곳에서 키피를 마시며, 종교, 정치, 학문을 토론했습니다. 당시 이곳은 종교인과 상인들이 함께 마시는 사교 음료로 발전한 것이비다. 17세기 베네치아 상인들을 통해 유럽으로 전파되었으며, 커피하우스가 등장하자 신문과 정보가 모이고, 시민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는 공간으로 되었습니다. 커피 하우스는 낮은 비용으로 누구나 들어가 대화와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이는 교회와 왕실 밖에서 이성과 비판적 사고를 발전시키는 공간이 되었던 것입니다. 계몽주의는 이성과 비판적 사고, 경험과 관찰, 종교적 권위와 절대왕정에 대한 검토를 중시하는 지적 흐름입니다. 커피하우스는 이러한 원인을 만들어낸 사회적 의견 공유 장소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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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명절은 어떻게 생겼던걸까요?
고대 부여, 고구려, 동예, 삼한에서는 제천행사가 있어 왔습니다. 이 제천행사가 삼국시대로 계승되어 정월 대보름, 단오, 추석 등의 세시 풍속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고려는 9대 명절로 대보름, 삼짇날, 팔관회, 한식, 단오, 추석, 중구, 동지를 즐겼으며, 조선은 설날, 한식, 단오, 추석의 4대 명절 체계가 있었습니다. 설날은 삼국시대 문헌 <삼국유사>, <삼국사기> 설날 풍속이 기록되어 있으며, 원단, 원조 등으로 불렸습니다. 그리고 추석은 유리왕(서기 32년) 가배 기록이 있어 신라 초기부터 명절로 행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한가위는 크다와 가운데에서 유래되었으며, 8월 한 가운데 있는 큰 날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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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의 가문은 원래 전통적인 학자집안이었나요?
제갈량 가문은 전통적 학자 집안보다는 관료, 지주 계층에 해당합니다. 성씨는 본래 갈씨였는데, 낭야군 제현에서 양도현으로 이주한 뒤 기준 갈씨와 구별하기 위해 '제'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조상은 서한의 원제 때 제갈풍이 사례교위를 지냈다고 합니다. 아버지 제갈규는 후한 말 태산군승으로 군의 부지사에 해당하는 지방 관료입니다. 그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백부 제갈현에게 약육되었으며, 학자 농부로 불리며 독학으로 학문과 정세를 익혔습니다. 처가도 형주 명문 황승언의 집안으로 지역 유력 가문과 혼맥은 맺은 것으로 보아 지역의 사대부적 배경을 알 수 있습니다.제갈량의 지략 이미지는 관료로 활약하면서 지략, 정치적 이미지가 강해진 것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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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민족반역자 기준은 어떻게 되나요?
친일 반민족 행위자 기준으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으로 본다면, 우선 일제의 한국 강점 과정에서 협력한 친일 매국노, 일제의 한국 식민 통치에 적극 협력한 고위 관료, 경찰, 군인 등, 그리고 일제의 침략 전쟁에 적극 협력한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고 법적으로 <일제 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1904년 러일 전쟁 개전 이후 1945년 광복까지 행위 중 조약 체결 모의, 독립 운동 탄압, 단체 활동 방해, 밀정, 주도적 협력, 침략 전쟁 협력에 해당하는 사람을 말합니다.따라서 지속성, 반복성, 적극성을 기준으로 한다면 단순 근로만으로는 친일 반민족 해위자로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일반 하급 관리·교원·기술자·노동자 등 생계나 강제 동원으로 일한 경우까지 모두 포함하는 것은 아니며, 통치·탄압·선동·의사결정 등에서 적극적 역할을 했는지가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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