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전세 제도는 언제, 왜 생겨나게 된 건가요?
우리나라의 전세 제도는 매우 독특한 편이라고 들었습니다.
이러한 전세 제도는 언제 생겨난 것이고 어떤 이유가 생기게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김희영 공인중개사입니다.
예전부터 우리나라에는 토지나 건물을 담보로하여 돈을 빌리는 제도가 있었는데, 19세기 개화기에 외국인과 농촌인구의 도시지역 이동으로 주택수요가 증가하면서 지금과 비슷한 제도로 발전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당시 부동산 관련한 금융 시스템이 없어서 주거를 마련해가는 시스템으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게 된 것인데, 이후 주택 가격이 계속 상승함에 따라 월세보다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해주는 전세의 장점이 두드러지다 보니 지금까지도 전세 제도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입니다. 전세사기로 인한 피해가 심각하다보니 폐지론이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이지만 현 시점에서 전세제도를 대치할 만한 제도도 마땅하지 않고 기존의 수많은 전세계약자들이 또다른 피해를 입을 가능성도 있어 대안도 없는 갑작스런 폐지는 어려울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한영현 공인중개사입니다.
답변드리겠습니다.
전세제도는 우리나라에 있는 독특한 제도입니다.
과거 우리나라는 금융이 발달하지 않아 목돈을 빌리기 참 어려웠습니다.
명동 사채시장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닙니다.
자금을 융통하기 위해 임대인은 거주를 제공하고 임차인은 보증금을 제공하면서 발달하게 된 것이 지금의 전세 시장입니다.
이제는 법으로도 보호를 받고 있어 제도화된 것이라 없어지기 어렵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유창효 공인중개사입니다.
전세제도라는게 정부가 만들어서 확장시킨게 아닌 이전부터 이어져 오던 거래당사자간 거래방식중 하나라고 보시면 됩니다. 즉 임대인과 임차인이 서로간 필요에 따라 조금씩 변형되어 이어진던 제도가 전세제도이고 정부는 이러한 전세제도에 대한 규재나 특별법등을 통해 제도를 개선해 오며 지금까지 왔다보시면 됩니다,
역사적으로 비슷한 거래방식은 조선시대이전부터도 존재하였다는 이론이 많으나, 실제 전세제도가 급격하게 확산된 시점은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시작하던 시기인 70~80년대로 보시면 됩니다. 해당 시기 우리나라는 서울에 인구가 유입이 되기 시작하였고 주택부족문제가 심각해지고 주택이 부족한 만큼 매월부담하는 주거비용도 급격하게 높아지게 됩니다. 이에 따라 임차인입장에서는 목돈을 한번에 지급하고 매월 월세납입이 없는 전세제도가 매우 유리하였고, 임대인 입장에서는 당장의 월세가 없더라도 목돈을 한번에 받아 다른 주택구입이나 다른용도로 활용가능하였기에 서로간 이해가 맞아 매우 넓게 확산되게 됩니다.
안녕하세요. 최병옥 공인중개사입니다.
우리나라가 산업화가 본격화 되면서 사람들이 도시로 많이 몰리게 되었습니다.
전세 제도가 본격적으로 자리잡던 1960~1970년대 한국의 금리는 매우 높았습니다. 주택 소유주들은 보증금을 은행에 예치해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거나 다른 곳에 투자를 하기 위해서 목돈이 필요 했고, 세입자들은 매월 임대료를 내는 월세보다 전세 보증금을 한 번에 맡기고 장기간 거주할 수 있는 전세 제도가 경제적으로 유리하다고 느끼게 되자 서로 간에 계약을 통해서 합의를 하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이제동 공인중개사입니다.
우리나라의 전세 제도는 근대말 부터 시작된 소작인 제도가 변화되어 오다가 주거 문화의 측면에서 한국전쟁이 거치면서 서서히 정착하기 시작 보증금 제도의 주거문화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말하면 서구식의 수익 개념의 이익 창출 개념이 아닌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피난살이의 공공체의 주거개념에서 출발된 특수한 형태의 주거문화라 볼 수 있습니디
그러나 오늘날은 투자개념을 발전하면서 부를 창출하는 디딤돌 역할을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서민입장에서는 매달나가는 소비성의 월세보다는 보증금을 담보로 주가문제를 해결하는 유익한 제도로 정착되며 한국적 특성에 맞는 제도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고 봅니다
안녕하세요. 유현심 공인중개사입니다.
우리나라 전세 제도의 기원은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비롯된 것으로 보이고 당시 부산, 인천, 원산 등 3개 항구 개항과 일본인 거류지 조성, 농촌인구의 이동 등으로 서울의 인구가 급격히 늘면서 주택임대차관계가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조선말기 전세가격은 기와집과 초가집에 따라 달랐으며, 보통 집값의 반 정도로 전세값을 받았으며 비싼 곳은 집값의 7∼8할에 육박했고 전세기간은 통상 1년으로, 기간을 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이후 6·25전쟁과 산업화 과정에서 도시의 주택난이 심화되었고 이 과정에서 전세 제도가 완전히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일각에서는 고려시대의 전당제도가 조선시대에 이르러 주택을 대상으로 하는 가사전당으로 발전하면서 현대에 이르렀다는 시각도 있으나, 가사전당은 단순한 사금융의 한 형태로서 주택을 답보로 하는 금전대차제도에 불과하여 전세 제도와는 엄격히 다른 것으로 판단된다고 합니다
전세 제도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주택임대차 제도이고 전세 제도가 도입된 것은 주택금융시장이 활성화되기 이전에 집주인과 세입자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나타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집주인은 부족한 주택구입자금을 전세자금을 이용하여 무이자로 융통하고, 세입자는 매달 이자를 부담하는 것보다 주택의 절반가격 정도에서 주택을 임차하는 것이 득이 되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