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황룡사는 왜 낙뢰사고가 많았을까요?

신라의 황룡사는 창건된 이후 여섯 차례나 낙뢰 사고를 당했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이유가 뭘까요? 번개를 부르는 재질이었을까요? 아니면 구층목탑이 거기서 제일 높은 건축물이어서?

6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최현지 공인중개사입니다.

    높이가 약 80미터 정도로 아파트 기준 20~30층에 달해서 당시 서라벌 평야에서 가장 우뚝 선 건축물이어서 번개의 일차적인 표적이 됐습니다. 탑 맨 위에 상륜부와 찰주 등에 도금이나 청동 등 금속 재질이 사용돼서 번개를 유인하는 피뢰침 역할을 했고 번개를 끌어당김과 동시에 전류를 안전하게 땅으로 배출해주는 현대적인 피뢰접지 기술이 당시에는 없었습니다. 또한 목조 구조의 취약성 이유도 있는데 낙뢰를 맞았을때 쉽게 불이 타고 타오르는 목재 재질 특성상 대형 화재와 훼손 사고로 자주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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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택된 답변
  • 안녕하세요. 최병옥 공인중개사입니다.

    신라의 황룡사의 경우 낙뢰사고가 잦았던 이유로 추정을 하자면 주변에 높은 건축물이 없고 무엇보다 지금의 현대 시설처럼 피뢰침 역할을 할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당시 높게 지어진 탓에 바로 낙뢰를 맞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으로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시대 처럼 주변에 다른 건축물들이 있고 또한 피뢰침 역할을 할 만한 것들이 있었다면 낙뢰를 피할 수 있지 않았나 사료됩니다. 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유현심 공인중개사입니다.

    황룡사가 유독 번개를 끌어당기는 특별한 재질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증거는 없다고 합니다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압도적으로 높은 구층목탑이 주변에서 가장 잘 맞는 표적이었다

    ,피뢰침이 없어 낙뢰가 그대로 목탑과 화재로 이어졌다

    ,국가 최고 사찰였기 때문에 낙뢰 사고가 다른 사찰보다 훨씬 충실하게 기록되었다

    여섯 번이나 맞았다는 기록은 황룡사가 실제로 낙뢰에 취약했던 점과, 그만큼 중요한 시설이라 기록이 잘 남았던 점이 함께 반영된 결과로 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유창효 공인중개사입니다.

    정확한이유까지는 알수 없으나, 현재나와았는 원인으로는 신라 수도 경주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으며 주변에서 가장 높은 구층목탑이라는점, 피뢰침과 같은 시설이 없고, 목조건물 특징상 화재피해가 확대되는 단점이 있다는 것, 그리고 수백년간 존재했기 때문에 긴 기간동안 누적적으로 여러차례 기록된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600년이상 거대한 목조건물이라면 여섯차례의 숫자가 특별히 이상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하상원 공인중개사입니다.

    말씀하신 바와 같이 신라 황룡사 9층 목탑이 창건 이후 고려시대 몽골군에 의해 완전히 소실되기 전까지 여섯 차례나 중건을 거쳐야 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잦은 낙뢰 때문이었습니다. 인터넷상의 역사적 기록과 건축학적 추측을 종합해 보면, 이 목탑이 유독 번개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압도적인 높이와 탑 꼭대기의 금속 재질, 그리고 피뢰 설비의 부재라는 세 가지 요소가 치명적으로 맞물린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원인은 질문하신 것처럼 당시 그곳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는 점입니다. 기록을 토대로 복원해 본 황룡사 9층 목탑의 높이는 약 80m로, 이는 현대의 30층짜리 아파트와 맞먹는 어마어마한 규모입니다. 게다가 탑이 세워진 경주 분지는 주변이 탁 트인 평야 지대였기 때문에, 먹구름이 몰려와 벼락이 칠 때 번개의 에너지를 분산시켜 줄 높은 산이나 다른 고층 구조물이 주변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평지에 홀로 우뚝 솟은 이 거대한 탑이 자연스럽게 벼락을 끌어당기는 일차적인 표적이 된 것입니다.

    첫 번째 원인은 질문하신 것처럼 당시 그곳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는 점입니다. 기록을 토대로 복원해 본 황룡사 9층 목탑의 높이는 약 80m로, 이는 현대의 30층짜리 아파트와 맞먹는 어마어마한 규모입니다. 게다가 탑이 세워진 경주 분지는 주변이 탁 트인 평야 지대였기 때문에, 먹구름이 몰려와 벼락이 칠 때 번개의 에너지를 분산시켜 줄 높은 산이나 다른 고층 구조물이 주변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평지에 홀로 우뚝 솟은 이 거대한 탑이 자연스럽게 벼락을 끌어당기는 일차적인 표적이 된 것입니다. 결국 주변에 낙뢰를 받아줄 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인것도 모자라 꼭대기에 피뢰침을 달아 놓았으니, "여기에 벼락을 내려주세요." 라는 친절한 안내판이 된 것이죠.

    게다가 화재사고가 많았던 이유 중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엄청난 전기에너지를 땅으로 안전하게 흘려보내는 '접지 기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고층 건물들은 피뢰침이 벼락을 맞더라도 안전한 도선을 통해 전력을 땅으로 배출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시스템이 없었습니다. 번개가 꼭대기의 거대한 쇠장식을 때리는 순간, 갈 곳을 잃은 수억 볼트의 고압 전류는 전도성이 없는 바짝 마른 목재 기둥들을 뚫고 억지로 흐를 수밖에 없었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열에너지로 인해 순식간에 불꽃이 튀며 대형 화재로 번진 것입니다. 결국 황룡사 9층 목탑은 구조적으로 번개를 가장 잘 끌어당기면서도 그 충격을 방어할 수는 없는 형태였기에 낙뢰 사고가 숙명처럼 뒤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과학적으로 이런 원인을 알아 낼 수 없었기에 말들이 많았었는데요, 지금 생각해 보면 단순한 과학적인 원인들이 만들어낸 필연적인 결과였습니다. 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한영현 공인중개사입니다.

    황룡사가 특별히 번개를 끌어들이는 재질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기보다 당시 신라에서 가장 높고 눈에 띄는 건축물이었기 때문에 낙뢰를 받을 가능성이 컸다고 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즉 높아서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