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공영개발이라는 주도하에 서울 어디지역이 주로 개발되고 공급이 늘어나요
80년대 신군부는 공영개발이라는 주도하에 서울의 어디지역을 중심으로 주로 개발이 되었는지 궁금하며 대규모 공급이 늘어난 지역이 어디인가요
안녕하세요. 김경환 공인중개사입니다.
1980년대 신군부 시절, 즉 전두환 정권(1980~1988년) 시기에는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서울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공영개발 정책 아래 서울과 주변 지역 중심의 주택 개발 및 공급 확대가 진행됐습니다.
1980년대는 서울 인구가 1,000만명을 돌파하면서 민간이 해결하지 못하는 주택난, 도시 빈민 문제, 불량 주거지가 확산되 되었고 주택 공급 확대와 주거 안정이 국가 과제로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부가 직접 개발에 개입하는 공영개발이 추진이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대치, 도곡, 개포, 압구정 등 개발이 본격화되기 시작했고, 강북의 상계, 미아, 수유, 번동 등의 불량 주거지 정비 및 저소득층용 아파트가 건립 되기도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유창효 공인중개사입니다.
1980년대 서울 도시개발은 88올림픽. 88아시안 게임등 국제도시로써 면모를 갖추기 위한 정비와 건설의 시기로 볼수있습니다. 그에 따라 서울중심부에 대한 정리사업과 서울내 반경 30KM에 이르는 광역화개발사업을 시작하였던 시기로써 서울에서는 주로 중량천을 중심으로하는 동북권개발사업이 진행되었으며, 이에 따라 공장 및 판자촌등이 밀집되어 있던 창동과 도봉구에 대규모 주택단지등이 개발되기 시작하였다고 볼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김희영 공인중개사입니다.
80년대 신군부가 공영개발로 만들었던 대표적인 단지가 바로 유명한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입니다. 당시 국보위에서 5백만호 주택건설을 시행하기 위해 "택지개발촉진법"이라는 법을 제정하였는데 토지를 국토해양부장관이 택지개발 예정지구로 지정하기만 하면 일괄적으로 수용이 가능하도록 강제성을 부여하는 다소 위헌의 소지가 있는 법안이었습니다. 당시 국회가 해산된 상태였기에 국가보위 입법회의에서 간단하게 검토 및 통과를 시켜 토지개발공사, 주택개발공사가 수월하게 업무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개발당시 서울에서도 가장 낙후된 지역중 하나 였던 목동이 올림픽 준비등을 이유로 빈민가가 철거되고 개발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밖에도 강동구 고덕동, 강남구 개포동/양재동, 노원구 월계동/상계동, 송파구 문정동 등이 이시기에 개발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최병옥 공인중개사입니다.
1980년대 군부시절 정부의 주택건설국가시책에 부응하기 위해서 많은 주택 공급을 하게 되었는데 대표적인 개발지가
서울 강남의 개포지구의 경우 고급 아파트 위주로 노원구의 상계, 중계, 하계의 경우 중산층 및 서민위주의 주택을 공급하였으며, 예전 교육의 중심이였던 목동신시가지가 대표적인 개발 지구라 보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유현심 공인중개사입니다.
1980년대, 특히 신군부 시절(전두환 정부, 1980~1988)에는 공영개발을 통해 서울과 수도권 주택난을 해결하려는 강한 정책적 의지가 있었고 이 시기 서울 내부뿐 아니라 외곽 및 위성도시 중심으로 대규모 주택공급이 이뤄졌고, 이는 90년대 1기 신도시 개발로 이어지는 기초 작업이었다고 합니다
1980년대 공영개발 하에 주로 개발된 서울 지역은
1. 강동구 고덕지구
대표적인 공영개발지구
대한주택공사(현 LH)가 주도해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고 고덕주공아파트 등 당시 대표적인 공공주택단지 형성
저밀도 택지개발 ,철저한 계획도시형
2.강남구 개포지구
지금은 고급 주거지 이미지지만,당시에는 서민 주거 안정 목적으로 공영개발 추진했고 개포주공 아파트 시리즈가 이 시기에 조성 되었다고 합니다
3. 노원구 중계, 상계지구
당시 서울 동북부의 신주거지 개발
특히 상계동은 서울 내 최대 규모 공공아파트 단지 중 하나로 조성되었고 지금의 중계 주공, 상계 주공 아파트 단지가 이때 만들어졌습니다
안녕하세요. 한영현 공인중개사입니다.
답변드리겠습니다.
1980년대 신군부 시절 즉 전두환 정권 동안에 공영개발은 단순한 도시 확장이 아니라 정권의 정당성 확보, 경제 성장 동력 확보, 사회 안정도모라는 큰 틀 안에서 서울의 주택난 해소와 도시정비가 급진적으로 추진되던 때입니다.
이 시기 목동, 상계, 신내, 개포, 강서구 화곡동일대가 대규모로 개발이되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김영관 공인중개사입니다.
질문에 답변드리겠습니다.
980년대는 신군부(전두환 정권) 시절인데, 이때 ‘공영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서울과 수도권에 대규모 주택 공급이 본격화된 시기였습니다. 당시 부동산 가격 폭등과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주도해서 개발한 지역들이 꽤 많아요.
가장 대표적인 지역들을 정리해드릴게요.
1980년대 공영개발로 집중 개발된 서울 주요 지역강남구 개포동, 대치동, 도곡동 일대
당시 강남 개발의 핵심이었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섰습니다.
개포주공, 대치주공 같은 대규모 단지들.
송파구 잠실동, 신천동
석촌호수 주변과 잠실주공 아파트 단지로 대표.
1980년대 서울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개발이 집중됐어요.
강동구 둔촌동
둔촌주공 아파트 단지로 대표되며, 최근 재건축 이슈로도 유명하죠.
당시 주택난 해소를 위한 대표적인 공영주택단지.
노원구 중계동, 상계동
80년대 후반 강북권 대규모 아파트 단지 공급.
상계주공, 중계주공 단지들.
당시 대규모 공급된 지역의 특징국가가 토지 매입 → 아파트 단지 조성 → 저렴한 가격 공급
교통망과 기반시설도 동시에 개발 (지하철 2호선, 올림픽대로 등)
공영개발 → 택지개발지구 지정 → 대규모 아파트 공급 구조
이때 개발된 지역들이 지금 서울 주요 아파트 밀집 지역의 뿌리
참고로 당시에는 주공(한국토지주택공사 전신)이나 서울시 도시개발공사가 주체가 되어 대규모 주택 공급을 추진했고, 그 결과 지금의 강남 3구(특히 개포, 대치, 잠실)와 노원구가 서울 주거 중심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참고하세요!